메인. 난 이렇게 살아요.

 


끊임없이 아름다운 것에 매혹 당하고 탐미하는 삶. 극적인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안온한 삶. 너무나도 무료해서 지루하기까지한 재미없는 삶. 비범하지 못한 삶.

나직한 음성. 보드라운 살결. 비누 향이 섞인 살 내음. 크고 단단한 손. 촉감 좋은 니트. 갓 말린 이불에서 나는 섬유유연제향과 바삭바삭함. 그 이불 위에서 드는 낮잠. 아무 것도 입지 않는 것. 머리를 감겨주는 것. 책 냄새. 해가 질 무렵. 늦은 오후 노르스름한 햇볕과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 맨발로 잔디 위를 걷는 것. 빗소리. 우산을 쓰지 않은 채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비를 맞는 것. 하늘. 그늘. 새벽. 혀가 녹아버릴 것 처럼 달디 단 초콜릿. 설탕. 치즈. 들으면 잠이 올만큼 잔잔한 노래. 미소. 눈동자. 수필. 한가로움. 목욕. 인적이 드물어도 무섭지 않은 곳. 말은 적을 수록. 담백한 관계. 예의. 구석. 놀이터마다 하나씩 있는 그네. 다 늘어난 바닐라스카이 비디오 테이프. 나태한 나와 달리 치열하게 사는 타인의 모습. 내가 흘리는 건 싫지만 그런 이들이 흘리는 땀은 아름답기까지 해서. 좋아해.



2011.2.12 /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슥사라삭삭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난 차라리 웃고있는 삐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아는 삐에로가 좋아.







2011.2.12 /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철부지 시절부터 귀에 익숙한 탓에 도리어 깊이 생각지도 못하고 흘려들었던 김완선씨의 곡.
이토록 쓸쓸한 노래일 줄은 몰랐지. 곱씹어 볼 수록 더 서글퍼지는 노랫 말.
...난 저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어.

언제나 그러하 듯이 이번에도 온통 파랑과 보라.
파브리아노 워터컬러 스케치북/ 수채, 색연필, 금분 아크릴.






잠식. 난 이렇게 살아요.





언제부터 멈추어있었던걸까.
생각도, 글쓰는 것도, 그림그리는 것도. 모든게 다 멈추어진 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한 시간동안 멈추어있던 손과 눈과 뇌. 며칠 전 간만에 그림을 좀 그려보겠다며 서랍장에 묵혀둔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들었다. 호기롭게 스케치북을 펼쳐들고선 일시정지. ....막막해졌다. 무엇을 그려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얗고 커다란 백지를 곰곰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곧이어, 공허한 여백은 한없는 공포가 되어 다가왔다. 난. 도대채.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무엇을 그려야할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있었다. 굳이 생각치 않아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여백이 허락된 어느 곳이든, 손에 쥐어진 것이 무엇이든, 온 감각과 신경이 그 공간을 매꾸는데 주저함이 없던 때. 무엇을 해야한다고 굳이 생각치 않아도 저절로 백지 위를 흐르던 손. 선 혹은 색으로 천천히 채워져가던 공간을 바라보던 눈. 저질러진 행위를 뒤늦게 인지하기 시작하던 뇌. 내게 숨쉬는 것과 다를 바 없던 그 모든 것들, 이 낯설어지고 말았다. 잔인한 현실. 지독한 좌절감과 망연함이 범벅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앞서 말한 것들이 숨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했지만 실은, 못하게 되었다고 죽지는 않아.
난 여전히 숨을 쉬고,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후회를 하고, 감정을 배설하며, 살아간다. 이게 잘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살아간다.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일 터. 이토록 당연하게 살아지는 삶, 그거면 되었다고 자위한다. 이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단념한다. 돌아가지 못할 시절을 그리지 않겠다. 돌아가기를 바라지도 않겠다. 허망할지언정 허황된 꿈은 꾸지 않으리라. 결국, 이대로 잠식되어 간다. 모든 것들이.  그래서 난 이대로 끝. 다시 돌이켜보려 애쓸 근성도 꿈꿀 용기도 가지지 못한 나는, 더는 불행을 실감할 자격도 없다.
`



그리고 그날. 망연했던 날. 흔적이 될 그림 한 장. 20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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